‘나혼산’ 시대여도 외로운 건 싫어

‘함께-혼자’ 노는 공간에 모이는 MZ 세대

타인과 어울려 노는 데 시간 낭비하긴 싫다. 그러나 혼자도 싫다. 접속만 되어있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MZ세대의 욕구를 읽어낸 공간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 실습기자 오지예

빨래하며 샹그리아 한 잔!

서울 이태원동 해방촌의 가파른 경사길을 10분가량 오르면 ‘coffee, here’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카페가 아니다. 빨래방 ‘론드리 프로젝트’이다. 벽면엔 사람이 그려진 액자, 중앙엔 둥그런 탁자. 마치 카페 같다. 단지 벽 한 켠이 유리벽으로 막혀 있고, 그 안에서 여섯 대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곳이 빨래방임을 알 수 있다. 한쪽에선 젊은 남성이 샹그리아를 홀짝이며 외국인과 영어를 공부하고, 옆 탁자에선 이어폰을 꽂은 채 빨래를 개키는 여성이 보인다.

이곳은 메뉴도 색다르다. 세탁, 건조에 각 7,000원, 세탁+건조+음료 세트는 음료 종류에 따라 17,000원~20,000원 선이다. 음료나 디저트만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장인 서수현(28세, 서울 후암동) 씨는 한 달에 서너 번쯤 이곳을 찾는다. 그는 18,000원 세트를 주문한다.

“유유자적하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어요. 빨래 시간이 오히려 휴식 같아요.”

이현덕 론드리 프로젝트 대표는 프랑스 유학 중 빨래방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떠올리며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평일 오전엔 주로 외국인들, 주말엔 빨랫감을 가져온 동네 주민과 ‘핫플’이라 찾아온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단골손님도 꽤 된다. 그는 “공간에 대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마음이 열리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월 구독료 10만 원대 거실?

서울 논현동 ‘페어링스’는 멤버십 공유 거실이다. 약 33평의 공간 안에 양주병들이 진열된 바(bar), 암막 커튼이 쳐진 시네마룸, 책들이 꽂힌 서재, 세미나실 등이 있다.

월 16만 원대로 이곳을 이용하는 개인 사업자 박진아(32세, 서울 역삼동) 씨는 옆 사람과 얘기하다가도 금세 제 할 일로 돌아가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친한 사람에겐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여긴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니 그런 부담이 없어요. 시설도 고급스럽고 자유로운 느낌까지 주니 구독료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아요.”

위스키 수집이 취미라는 대학생 이승민(28세, 서울 서초동)씨는 구독자 친구의 초대로 이곳을 찾는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 술마시긴 어렵잖아요. 여긴 바(bar)도 있는데 배달도 시킬 수 있어 좋아요.”

김초록 페어링스 대표는 “경기도 부천이나 수지 등 먼 지역에서 오는 구독자가 많다. ‘혼자가 편하지만, 외롭고 싶진 않은’ 젊은이들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의 이용권은 이용시간에 따라 월 12만~20만 원이다. 하루 체험권은 2만 8500원이다.

‘말’이 아닌 ‘신청곡’으로 대화하는 음악바(bar)

이곳에선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하려면 탁자에 놓인 메모지로 필담을 나눠야 한다. 오롯이 음악만을 듣는 공간, 이곳은 서울 성내동 ‘백지화’, 대화금지 리스닝룸이다.

뮤지컬을 전공하는 대학생 안형준(26세, 서울 길동)씨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여길 찾는다고 한다. 잔뜩 지친 그의 마음에 ‘친구’를 들여놓을 여유 공간은 없다. ‘음악’이 들어올 공간만 남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청곡이 마음에 훅 다가올 때가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순간이에요.”

홍의겸 백지화 대표는 “말이 아닌 ‘신청곡’을 통해서도 타인과 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단골손님들도 하나같이 여긴 혼자 와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저와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카페에선 ‘사람멍’?

MZ세대에게 카페는 ‘사람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가장 싼 값에 사람과 ‘접속하는’ 공간이다.

취준생 고 모(25세, 서울 봉천동) 씨는 매일 카페로 출근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흑백인간’이라 칭한다. 카페엔 그처럼 후줄근한 옷을 입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흑백인간’들로 가득하다. 그는 “이 공간 속에서는 나 혼자 취준하나?하는 불안감이 사그라든다”고 말한다.

북카페를 즐겨 찾는 대학생 송 모(22세, 서울 여의도동) 씨는 카페 직원들이 책에 꽂아둔 글귀를 좋아한다. 그는 “타인과 생각을 나누는 느낌은 집에서는 경험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생 반 모(21세, 서울 대학동) 씨는 “집에서보단 덜 풀어지고, 독서실에서처럼 답답하진 않아 카페를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 김 모(23세, 서울 봉천동) 씨에게는 음료 비용이 큰 부담이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5천 원 넘는 곳은 안 가고, 음료 한 잔 시킨 채로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가요.”

이러한 ‘카공족’이 늘어나면서 일부 카페는 ‘음료 하나당 2시간 제한’, ‘주말 저녁 노트북 이용 금지’ 규정을 두거나 콘센트를 덮개로 막아둔다. 운영자 입장에서 ‘저렴한 음료와 장시간 이용의 콜라보’인 카공족은 상당히 난감하기 때문이다.

혼자 놀지만, 함께하는 공간에 끌리다

MZ세대는 혼자 놀지만 타인과의 연결을 원한다. 그들은 ‘접속’할 공간을 헌팅하러 나선다.

인터넷이 일상인 MZ세대는 오프라인 세계에서도 단순히 ‘연결’만 되어있는 상태를 찾는 것이다. 빨랫감을 개거나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있는 곳을 찾는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도시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이를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으로 설명한다. 영국의 펍(pub)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흩어지면서, 모르는 사람들과의 느슨한 관계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접속공간’이란, 바로 이런 ‘느슨한 관계’가 나타나는 곳이다. 한국의 MZ세대도 느슨한 관계에 빠져 있다. 그들은 가족, 연인, 친구처럼 ‘친밀하여 신경 써야 하는’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청년세대를 공략한 상업 공간들도 점차 늘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언제든 연결될 수도, 해방될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청년주택 센터스퀘어 등촌의 ‘라라(lala)라운지’, 공유 주방 서울 화양동 ‘쿠키키쿠 베이킹 스튜디오’, 수면카페 서울 역삼동 ‘쉼스토리’ 등, 젊은이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러한 공간을 찾아 나선다.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이른바 접속과 공유의 시대가 열렸다며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공간이 배타적인 ‘소유’보다, 사회와의 ‘접속’ 및 타인과의 ‘공유’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유주택에 1년째 사는 대학생 오서연(22세, 서림동)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는 거실로 나와 차를 마신다. 같은 주택에 살고 있는 대학생 유은진(21세, 서림동) 또한 널찍한 공용 거실에서 공부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혼자는 아니지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 즉, ‘접속’만 되어있는 공간에서 되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느슨한 사회적 연결’을 박사 학위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구선아씨는 “젊은 세대가 혈연, 지연, 학연 관계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구 씨가 논문을 연구하며 발견한 모습은, 취향이나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 간 신뢰를 바탕으로 ‘느슨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우,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행복감과 자존감 상승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