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금동이’도 쫓아내는 공간들

  • 실습기자 장연우

박지이(42세, 상도동) 씨는 최근 4살짜리 아들과 함께 홍대의 한 카페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다. 점원이 ‘노키즈존’이라며 아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원은 강아지를 안은 손님에게는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박 씨는 “‘펫’은 가능하지만 ‘키즈’는 안 받는 가게였다”며 “아이들이 반려동물보다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홍대 카페에는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없다는 팻말이 많이 걸려있다.

최근 한 주말 오후 홍대 인근의 카페를 찾았다. 내부엔 온통 젊은 사람들뿐이다. 직원에게 어린이를 데리고 와도 되는지 물어보니, ‘노키즈존’이란 답이 돌아온다. 아이들이 조용한 분위기를 해쳐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거나, 뛰어다니며 장식물에 부딪힐 우려가 있기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다른 카페들도 역시 ‘노키즈존’인 곳이 많았다.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이 모(21세, 서초동) 씨는 “홍대나 성수 같은 ‘핫플’ 카페에서 어린이를 본 적은 거의 없다”며 “만약 이런 카페에 어린아이가 손님으로 앉아 있다면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생 시대. ‘금동이’라 불릴 만큼 귀한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을 환영하지 않는 곳도 많다.

어린이집·유치원 ‘웨이팅’, 보육 공간도 ‘경쟁’해서 얻어야

“저출생 시대라더니, 어린이집 들어가기는 더 힘들어요.”

경기도 양주 옥정 신도시에 사는 조예나(32세) 씨와 장대천(37세) 씨는 둘째 출산과 동시에 첫째가 다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넣었다. 하지만 2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순서가 오지 않아 결국 민간에서 운영하는 가정 어린이집을 보냈다. 조 씨는 “둘째인데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입소가 첫째 때보다 어렵게 느껴졌다”며 “그나마 가까운 가정 어린이집에 자리가 난 것만도 다행이다”고 말했다.

장 씨는 “신혼부부들에게 혜택을 주는 청약이 몰려 있어 신도시로 이사를 왔더니, 대부분 신혼부부들이라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가 많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외곽 신도시에 젊은 신혼부부들이 몰리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이집·유치원 입소 전쟁이 벌어진다. 보육 인프라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신도시 병목현상’이다. 신혼부부 특례가 있는 거의 모든 신도시의 동일한 현상이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수도권 일부 신도시 지역의 공공어린이집 평균 대기 인원은 1곳당 35명에 달한다. 이는 2018년보다 약 1.8배 늘어난 수치다.

반면 양주시 다른 지역에서는 대기자는커녕 아이가 없어 유치원 폐원·휴원이 잇따르고 있다. 산북초 병설유치원은 폐원했고, 주원초 병설유치원과 봉암초 병설유치원 등은 휴원에 들어간 상태다. 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 소속 장학사에 따르면, “근방에 사는 영유아 수에 비해 어린이집·유치원이 많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폐원·휴원 조치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이들 없는 동네에선 ‘놀이터’에도 노인들뿐

한편 아이들의 공간인 놀이터가 노인들의 고요한 쉼터로 바뀐 곳들도 많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의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 놀이터를 찾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수업이 끝났을 오후 3시 무렵에도 놀이터를 찾는 어린이들은 드물었다. 대신 놀이터 벤치는 거의 노인들의 차지였다.

서울 창동의 한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아내의 휠체어를 끌고 놀이터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던 이기석(79세, 창동) 씨는 “근처에 아이들은커녕 젊은 부부도 드물다”며 “놀이터 벤치나 정자에는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부인들, 길 가다 잠깐 쉬는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공간의 단절이 공감의 단절로

우리 사회는 이처럼 아이들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으로 완전히 구별된다. 더 나아가 아이의 공간, 젊은이 공간, 노인의 공간 등 세대 별로 공간이 분리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실제로 서울시 자치구별 인구분포만 봐도 세대별로 사는 지역이 확연하게 다르다. 서울시 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지역’이고, 0-14세 인구 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한 곳은 도봉구·노원구를 포함해 11군데이다. 놀이터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이 없는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은 지역 인프라나 교육 환경이 갖춰진 동네로 이동하고 싶어하는 반면, 노인층은 기존에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으면서 이러한 분리는 가속화된다.

서로 다른 세대 간에 공유하는 공간이 분리되면서,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공간에 가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최정임(82, 상계동) 씨는 “젊은 사람들이 가는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 가긴 눈치가 보여서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만 찾게 된다”고 말했다. 조예나 씨는 “부모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닌, 다른 세대들이 주로 점령한 공간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이 같은 세대 간의 공간 분리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수정(서울대 아동가족학과) 박사는 지역마다 세대가 분리되고, 세대 별로 고립되는 현상이 심해질수록, ‘다름’에 대한 아이들의 수용 능력이 낮아질 것이 우려했다. 특히 “아이들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 청년에 대한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자신과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염려된다고 했다.